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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사나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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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정희 (121.♡.58.123) 작성일2012-10-25 14:10 조회220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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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친일행적을 보십시요

문경보통학교 교사로 있던 다카기 마사오(박정희)는 자진해서 만주군관학교 생

도생으로 스스로 들어갔다. 만주군관학교 2기생으로 자원입학(1940년 4월 4일).

다카키 마사오(박정희) 나이 23세. 입교 동기생으로 240중 조선인 12명. 15등으

로 입학하였다. 하지만 2기 졸업식에서는 240명중 당당히 1등으로 졸업하였다.

다카키 마사오(박정희) 그 덕에 영광의 얼굴로 [만주일보]에 실린다. 뿐만 아니

라 다카키 마사오(박정희)는 졸업식 날 다음과 같은 '선서'를 힘차게 낭독했다.


"대동아 공영권을 이룩하기 위한 성전(聖戰)에서 나는 목숨을 바쳐 사쿠라와 같
이 휼륭하게 죽겠습니다."


다카키 마사오(박정희)가 만주군관학교에 자원해서 들어가는 상황을 좀더 살펴
보자.

다카키 마사오(박정희)가 만주군관학교나 일본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하기에는 나

이가 많았다. 즉, 나이 때문에 자격 미달이었는데 다카키 마사오(박정희)는 이 문

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호적을 고쳐서 나이를 낮췄다고 한다.

또한 나이를 낮췄다고 멀쩡한 조선인이 군관학교/사관학교에 입학하기란 쉽지

않았다. 왜냐하면 신원검증과 사상검증을 통과해야 했기 때문이다. 당시 다카키

마사오(박정희)는 어떻게 하면 신원검증과 사상검증에서 인정을 받고 만주군관

학교에 입학 할 것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이에 동료교사 유증선이 아이디어를 내주었는데 "박선생 손가락을 잘라 혈서를

면 어떨까?"라고 하며 제안했다고 한다. 이에 다카키 마사오(박정희)는 그 자리
에서 찬동했다.

나이도, 신원검증도, 사상검증의 장애물을 한번에 날려 버릴 수 있는 충성혈서는

만주군관학교 사람들을 감동 시켰다. 아니 일제를 감동 시켜 당시의 언론에(만주
일보) 대서 특필 되었다.


"盡忠報國 滅私奉公(진충보국 멸사봉공)"


이 글귀가 바로 다카키 마사오(박정희)가 손가락을 그어 쓴 '충성혈서'이다

이 글귀를 풀이하자면 '충성을 다하여 나라에(일본) 보답하고, 나를(私) 죽여서 국가를(公) 받들겠습니다."라는 가

미가제식 자폭성 혈서를 쓴 것이다. 이 충성혈서는 한 가지 기록을 갖게 된다.

일제 강점기 36년 동안 혈서로 일본천황에 충성을 맹세한 조선사람은 다카키 마사오(박정희) 뿐이었다.

혈서로 일제에 충성을 맹세한 사람은 다카키 마사오(박정희)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교사의 신분으로 있던 다카키 마사오(박정희)가 만주군관학교에 자원 입대하는

것은 천하제일의 기회주의자로 출발하는 신호탄이었다. 다카키 마사오(박정희)

는 온갖 방법을 다 써가며 자기를 지우려했던 어머니와의 출생전쟁에서 승리하

여 '죽음의 집' 같았던 어머니의 자궁으로부터 탈출하였고

다시 가난한 집과 고향으로부터 탈출하여 황국신민교육의 첨병 대구사범학교로
탈출하고...
다시 사무라이정신으로 무장한 일본군장교 양성기관 만주군관학교와 일본육군사

관학교로 탈출하여 '신민지 조선'을 탈출하게 된다.

그리고 천황주의자의 신봉자가 되어 '조센징 토벌'에 몸과 마음을 바쳐 젊음을 불

태우고 만주군관학교를 투철한 친일정신과 열성적 훈련으로 수석 졸업의 영광을 차지한

다. 수석졸업의 영광으로 금시계를 선물로 받고 졸업생 대표로 천황찬양으로 가득한 답사를 읽었다.


당시 친일신문〈만주일보 1942. 3. 24〉기사 일부를 인용하면...

[… 빛나는 우등생 오카이(日系), 고야마(日系), 다카키(鮮系-박정희) 등 5명에

게 각각 은사상증의 전달이 잇고 폐식 하였다....]

만주군관학교 출신의 조선인은 대략 제1기∼제7기까지 50여명 정도인데... 이 만

주군 출신들은 훗날 대통령, 국회의장, 국무총리, 국방장관, 군참모 총장, 해병대

사령관, 군사령관, 군단장, 연대장, 고급 참모등 정부와 군의 요직에서 나라를 이

끌어 가는 중요 인물이 된다. 한 마디로 황군들이 나라 조지고 민족정기 좀 먹는
세력이 된 것이다.

다카키 마사오(박정희)를 지도했던 한 일본인 장교의 말을 들어보면 다카키 마사

오(박정희)가 어느 정도 몸과 마음을 철투철미 하게 일본 제국주의에 충성하고

자 하였나를 알 수 있다.

[ 매년 가을이 되면 군관학교에는 생도 전원이 아침 8시부터 저녁 6시까지 행군

연습을 실시했다. 박정희는 그때 내가 맡은 소대의 제1분대장이었는데, 다른 분

대장과는 달리 기합이 들어 있었고, 의욕도 대단했다. 진지공격 연습 같은 때 대

단히 어려운 임무가 부여되더라도 박정희는 그 임무를 달성하려는 의욕으로 꽉

차있었다. 박정희는 말수가 적고 속에 투지를 감춘 사나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
라고 진술하고 있다.

군관학교를 졸업하고 관례대로 우등생에게 주어지는 일본육사 특전의 혜택을 누

리게 된다. 다카키 마사오(박정희)는 일본 육사를 입학하려고 군관학교 시절 남

들보다 철저한 황군정신으로 몸과 마음을 닦고 열심히 공부한 것이다. 일본 육사

에서도 진지한 학습태도로 모범생이란 평을 받고 3등이란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
을 한다.

조선인 출신으로는 유일하게 일본 육군 대신상을 수상하기도 한다. 이로써 박정

희는 완전한 일본인(다카키 마사오)이 되었다. 아니 대일본제국의 군인이 되었
다.

당시 일본육군사관학교 교장 '나구모 쥬이치(南雲忠一)의 다카키 마사오(박정희)
에 대한 평가를 들어보자.

『....다카키 생도는 태생은 조선일지 몰라도 천황페하에 바치는 충성심이라는 점

에서 그는 보통의 일본인보다 훨씬 일본인다운 데가 있다...』라고 평가하였다.

또한 다카키 마사오(박정희)가 10.26으로 김재규 총에 맞아 죽었을 때 주한 일본

대사관에서 한 일본 외교관은 이러한 말을 했다.

"대일본제국 최후의 군인이 죽었다." 라고 하였다.

한마디로 다카키 마사오(박정희)는 JS(Japanese Standard)표 [일제인]이라는
말인 것이다.

소위 다카키 마사오(박정희)는 일본 본토의 마쓰야마 제 14연대에 처음 배속을

받았으나 진정한 일본군인을 참작하여 만주 제8연대의 소대장으로 임명되어 모

란강 부근의 영안으로 전출되었다가 화북지방의 열하 보병 제8군단에 배속된다.

영안지방 →간도에서 활약한 한인 독립군부대가 북만주로 이동할 때와 노령에서

활동하던 독립운동가들이 서쪽으로 진출할 때에 주둔하던 요충지였다. 열하지구

⇒ 일본군에 대한 항일 투쟁이 끊이지 않았던 지역이다.

항일세력은 팔로군, 군부군, 광복군, 조선의용군, 소규모의 게릴라 (유격대) 등이

었다. 다카기 마사오(박정희)는 이곳에 임관한지 1년만에 중위로 진급한다. 군의

편제상 소대장은 최전선에 배치된다. 여기에서 다카키 마사오(박정희)는 열성적

으로 항일부대를 토벌했던 공로로 승진이 빨랐던 것이다.

다카키 마사오(박정희)가 소속되어 있었던 부대는 독립군 토벌에 110여회를 출정

하게 되는데 과연 다카키 마사오(박정희)는 양심의 가책이나 동포를 죽이는 행

동 때문에 방아쇠를 당기는 행위에 고민을 하였을까?

미안하지만 어림없는 소리다. 다카키 마사오(박정희)는 '조센징 토벌'이라면 환

장을 한 놈이었다.

"조센징 토벌이다. 요오시(좋다)"를 연발하며 출정을 즐긴 놈이다. 이 상황을 좀

더 자세히 보자

문명자씨의 『내가 본 박정희와 김대중-워싱텅에서 벌어진 일들』에 다카키 마

사오(박정희)의 만주군 시절 이야기가 나온다. 1972년 문명자 기자가 어렵게 찾

아가서 듣고 기록한 생생한 증언이다.

다카키 마사오(박정희)와 함께 지냈던 어떤 만주군 장교 출신의 이야기를 들어보
자.

[.... 다카키 마사오(박정희)는 하루 종일 같이 있어도 말 한마디 없는 음침한 성

격이었다. 그런데 "내일 조센징 토벌 나간다."하는 명령

댓글목록

요약 좀..님의 댓글

요약 좀.. 아이피 101.♡.18.160 작성일

글 너무 길어서 읽기가 싫네.. 애국자나셨네.. 나셨어... 글 퍼서 올리지 말고 여약 좀 하삼!!

역시친일파였군님의 댓글

역시친일파였군 아이피 123.♡.110.80 작성일

아 박정희 가 이런 인간 이었구나
이제야 알겠네요
잘 읽었슴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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